"앞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으며 특정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오블챌을 한번 해봐야지"하고 마음 먹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21개의 글감을 선정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한 일이었다. 나름 고민을 해가며 주제를 선정했는데, 이게 왠걸. 우리 회사는 매일같이 나에게 글감을 던져주고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연민이 심한 H씨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심하고, 가부장적인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다. 몇 번 그 사고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바꿔보려 노력했으나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지 않던가. 그 긴 시간 저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찌 바뀌겠는가. 게다가 바뀔 사람이었다면 애시당초 저런 삶의 태도를 갖지 않았겠지.
여튼 그녀가 여성인권의 걸림돌인건 명확하고, 나는 그 걸림돌을 연마하거나 저 멀리 치울 힘도 없기에 H씨의 사고방식이 매우 고루하다는 정도로 가끔 의견을 표명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제, H씨와의 대화에서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다.
평소 H씨는 "나도 지금같으면 결혼 안했어"라던가, "혼자사는게 제일 좋아"라는 식으로 비혼자인 나에게 훈수질을 하곤 했었는데, 사실 저 말조차도 "결혼과 육아라는 당연한 숙제를 마친 나"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을 받아주기만 하면 어찌나 "정상가족"을 이룬 자신에 대해 썰을 풀던지. 하. 진짜 안궁금한데. 누군가는 남의 꿈(잘때 꾸는 꿈), 남의 여행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다지만 난 남의 남편, 남의 애기 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다.
여튼 그런 H씨가 나에게 어떤 미혼남직원에 대한 뒷담화를 하며, "그러니까 그 사람이 결혼도 못했지"라고 말한 뒤, 정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결혼을 못한' 나에게 "어머 미안해"라고 말했다. 마치 일부러 준비라도 한 듯이. 근데, 그거 나한텐 칭찬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H씨의 논리를 이해해보자면 이런거 아닐까 싶다. "결혼"이라는게 너무너무 대단하고, 숭고한 일이라서 자기가 삶에서 이룬 대단한 일인거고, 그걸 해낸 자기가 너무 자랑스러운 거다. 근데 그 대단한 걸 못한 이 비혼/미혼자들은 하자가 있는 거고, 딱딱스구리 너에게 하자 있다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 라는 그런거? 그리고 딱딱스구리가 하자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아주 주저없이 바로 나온거지.
근데 또 신기한 건, 이혼을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주 박하다는 거다. 되려 박한 평가를 아주 대놓고 거침없이 드러낸다. 으잉? 아니, 그녀의 논리라면 "결혼"이라는 대단한 과제를 해봤던 사람이니까 이혼한 사람들도 인정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결혼해야 흠결없는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인거면, 유퉁씨는 H씨의 뮤즈가 되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왜 8번 결혼한 유퉁씨 인정 안해줌?
즉, "결혼"을 한 자기자신, 혹은 "결혼, 정상가족"의 유형을 유지하고 있는 자기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운거고, 지지고 궁상이어도 "결혼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최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거구나 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흐음.. 그래서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여자들이 이혼을 잘 못하는 거겠지?
뭐, 본인이 행복하면 됐다 싶은데, 나는 좀 빼줬으면 싶다. 나는 H씨 같은 삶은 살 수도, 살고 싶지도 않다. 비위가 좋지 않고 가부장제를 견디지 못해 결혼을 못하는 나여서, "저러니 결혼도 못한다"는 말을 들어서 참 행복하다. 나 진짜 잘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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