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개판이네요

몸이 고생하면 머리가 편하다

딱딱쓰구리 2024. 11. 15. 08:13

"앞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으며 특정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순전히 위의 짤을 쓰기 위해 쓰는 이야기이다. 난 정주영씨는 90년대 어느집에나 꽂혀있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의 저자이자, 북한에 소를 보낸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통찰력이 있는 사람인 줄은 이제 알았네.

아, 그리고 나의 지적허영도 조금 채우기 위해 덧붙이자면 책 '가짜 노동'의 한국버전의 모든 내용이 우리회사에 있다는 걸 적기 위함이랄까.

한때 우리 팀에는 '철야 역병'이 분적이 있다. 도대체 뭔짓거리들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회사에서 밤을 꼴딱 세운다던가, 새벽 3시~4시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다가 집에가서 씻고만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나는 회사 사람 모두를 붙들고 자신이 얼마나 늦게까지 일하는지를 한풀이 하듯 말하는 역병이 분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일하는 속도가 다 다르니까 같은 일을 해도 오래 걸릴수 있다고 생각하려 했었다.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고, 일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다를 수 있고, 일에 공들이는 시간이 길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그들에게 초과근무가 발생하는 것은 근무시간 중에 그들이 자행하는 가짜노동 때문임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역량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이자, 부족한 결과물을 용서받기 위한 수단이고,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던 구닥다리 마인드를 못버린 촌스러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주어진 업무를 해결하는 것보다 인적관계형성과 말퍼뜨리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근무시간 중에 사내 메신저를 너무나도 열심히 이용하곤 했는데, 종종 내게도 말을 걸어 본인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일이 얼마나 과중한지를 말했고 붙들렸다 하면 2시간이었다.
본인들 말로는 일종의 협업 혹은 업무문의를 위해 메신저를 한거라고 하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자기가 근무하던 전 회사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조언을 구해서 그걸 답하느라 일을 못한다고 얘기 했는데 그런 이유로 현 직장에서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직무유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2~3시간을 잔 팀원들은 결국 근무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졸거나, 회사 건물 어딘가 빈 공간을 찾아 그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하루 2~3시간을 자면 정상적인 사고도 안될뿐더러, 업무 효율이 날 수가 없다. 그냥 집에가서 발 닦고 푹 자고 업무에 집중하는게 답일텐데 라는 생각이 입안에 빙빙 돌았다.
 
또 결론적으로 그들은 본인의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업계 경력이 그리 많다고 으시댔으면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어디서 무엇을 찾아봐야하는지도 모르고, 알려줘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감하네 정말.

자기 몸을 혹사 시키는데 내가 뭐라겠냐만서도,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이 철야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본인을 뺀 모두를 나빼썅으로 만든다는 것.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철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악질이라', '동료가 무능해서 내가 그 일을 떠 맡느라' 철야를 한다고 핑계를 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야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을 안해서, 일을 대충해서' 일찍 가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 얄밉다는 말까지 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 철야러 중 1인이 상사와의 식사자리에서 드라마 주인공처럼 눈물을 흘리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모두의 위로를 받으려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자기는 어디서나 일을 잘한다는 소리만 들었다', '내가 일을 못하는 것 같냐'라는 질문을 하며 답정너처럼 굴며 나의 기를 쏙쏙 빼먹었던 것이다.
 
또 누군가는 프로철야러들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고, 철야에 대한 부채감을 갖기도했다.
기본적으로 업무 처리 능력이 떨어지거나, 업무 처리 능력 외 다른 것으로 회사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이 철야에 굉장히 집착하는 느낌이긴 했지만 굉장히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면서 대놓고 남성중심적이었던  90년대 조직문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듯 철야러와 비철야러 간의 쓰잘데기 없는 대결구도..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는데,
가장 가관인 것은 상사들이 철야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안다. 그 시절 그 때 어르신들이야 회사 충성심을 판단하는 첫번째 요소가 야근이요, 주말반납이라는 것을. 
실제로 철야러들은 일부러 주말에도 나와서 상사들의 눈에 도장을 찍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지를 토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철야러들은 저렇게 일이 많고 고생하는데!!팀장들 및 관리자들 뭐하는 거야!!라는 상사의 발언이 있었고 그들의 야근은 정당화되고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한번은 기가 쪽쪽 빨리다 못해 건조기에 들어간 빨랫감이 된 내가 "당신의 업무를 간트차트에 시간별로 다 써보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물론 그것조차 할 시간이 없다고 단박에 거절당했지만. 그 순간 느꼈다. 아, 개선할 의지가 없구나. 그냥 이 상황을 즐기는 거구나 라고.
도대체 어떤 업무가 그렇게 시간이 소요되는지, 이걸 어떡해야 단축시킬수 있는지 고민없이 일하는 게, 마치 공부법을 몰라 책상에 앉아 멍만 때리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공부는 안하고 그냥 앉아서 걱정만 하던 그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달까?

제발  철야러들이 본인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가길. 아, 차라리 내가 다른 곳을 찾는게 빠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