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으며 특정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우리팀원들이 그저 어린이집 수준인줄 알았다.
혀짧은 소리라던가 소위 애교라고 표현되는 대화법, 자기 중심적인 유아퇴행적 대화방식, 혹은 먹는 것과 자는 것과 같이 1차원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는 영유아스러운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처음 지들끼리 아기 흉내를 내며 대화하는 것을 처음 목격하였을 때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학생시절이건 직장인 시절이건 공적인 공간에서 저런 인간을 본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기에, 미친듯이 뛰는 곱등이를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그땐 나한테 뛰어오르지만 않으면 상관없지. 지가 저 지랄 한다는데 뭐. 으 징그러. 거기서만 뛰어. 나한테 튀어 오르지마. 이런 느낌.
그러나 이들과 영유아들간의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이들은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있는 힘껏, 가능한한 모든 영역에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남직원과 전화를 하면서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거나, 혀짧은 소리로 "애교섞인"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것을 목격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회식자리에서 남상사 입에 쌈을 싸서 넣어주거나,
남성 직원의 손을 덥석덥석 잡기도 하고, 유머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성희롱 발언이 오갔고, 꽃처럼 단장하고 남성의 모든 말에 웃음으로 떡칠한 기쁨조 역할을 과도하게 충실히 수행하는 일이 너무나 빈번했다.
난 그저 저들이 엄청나게 비위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일터에서 저렇게 "여성"으로서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는걸까라는 의문도 생겼다.
비위가 좋지 못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나에 비해 그들은 비위 뿐 아니라 부지런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남성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에 부던히도 공을 들이는 부지런함을 뽐냈다.
솔직히 말하면 아기같이 순진무구하고 마냥 밝고 위협적이지 않은 여성이 한국남성에게 얼마나 "먹히는" 존재인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먹힌다는 걸 기가막히가 체득한 우리 팀원들은 그 역할을 아주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고.
뭐 먹던 먹히던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긴 한데, 문제는 갈수록 곱등이가 활동 영역을 넓히며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아.. 이거 위험한데..
내 사무실이 전부 곱등이화 되겠어"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너그러움을 발휘하자면, 각 곱등이씨들이 저렇게 뛰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곱등1씨는 나이도 꽤 있고, 본인이 하던 일이 남성의 권력에 얹혀서 하던 일이라 저 버릇을 못버렸나보다 하고 이해를 해보려고도 했다. 그게 저 사람의 일하는, 살아온 방식일테니.
곱등2씨는 그냥 뼛속까지 남미새여서 저렇게 산다는데 어쩌겠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저런 잿빛 얼굴들 어르신들에게 유사연애 감정을 제공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니 신기한 종족이로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곱등3씨와 곱등4씨는 능력이 안되니 곱등1씨와 곱등2씨를 보면서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저것을 택한 것 같았다. 능력 뿐 아니라 사리분별도 구비하지 못하다니 옆에서 지켜보기 괴로운 인생이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만큼 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여성성을 어필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는게 말이나 되나 싶었다. 실제로 곱등1씨와 2씨는 전 직장에서 여성성 어필하는 방식으로 일하다가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별일이 아닌듯이 그리고 억울한 까임을 당했다는 듯이 말했었다. 이러나 저러나 회사에서 "직원" 정체성보다 "여성"정체성을 더 강조하면 말이 나올수밖에 없으니 여자들은 기를쓰고 그걸 안하려고 하는게 대부분 아니었던가?...
남성과 동등하게 일한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걸까? 대체 왜?
최근에 읽은 김현미 교수님의 책을 통해서 그 의문을 어느정도 해소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팀원들의 문화는 확실히 여성간의 친목도모를 넘어선 여성성 수행이라는 이슈에 훨씬 더 중점이 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여튼 저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남성직원을 향한 저들의 노력이 빛을 발해서 그들은 남성 직원들의 친절함(!)과 친근함(!)을 얻어냈고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동료'직원이 아니라 귀엽고 무해한 '여자'니까 그들에게는 장난스런 인사와 노닥거림이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랄까?
근데 나는 친근한 인사하나, 귀여움 받자고 비위상하는 짓은 못하겠는디..
'사랑받는 나'라는 연가시의 숙주가 되어버린 우리팀 곱등씨들과 자의식과잉으로 사리분별 못하고 다른 스테이지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남곱등씨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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