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개판이네요

어떻게 나이들지는 제가 결정할게요

딱딱쓰구리 2024. 11. 16. 10:01

"앞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으며 특정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얼마 전, 의지할만한 동료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이게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페미니스트로서 동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충 그런 질문이었는데, 아주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아마 이것저것 투덜대는 내 모습이 조금 두렵거나 불편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싶고.

내가 누군가의 언행이 불편하다고 느끼더라도 늘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편견덩어리이고, 나도 모르게 차별과 혐오를 하는 인간인걸. 또 누군가에게는 내 언행이 매우 불편할 거라는 것도 알고. 그니까, 그들의 편견이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안다. 개중에는 내게 진심으로 애정을 가진 사람도 있고.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말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걸어가는 가는 길이 다른거고 그때는 헤어짐을 고해야한다. 그리고 가끔 내 길에 똥을 뿌리려는 시도를 하니까 화가 나는 거고.


우리 회사의 여성직원 대다수는 나보다 연장자이다. 연장자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우리 조직의 젠더인식이 후진 편이다 보니 이 분들은 여성의 외모에 대한 품평, 연애문제 같은 이야기를 늘 빼지 않고 하신다. 하긴 뭐, 외모평가가 인사인 한국사회에서 우리 회사라고 뭐 특별하겠냐만 서도.
그날은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평소 그 분과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데, 행사 준비를 하다가 마주친 그분에게 인사+스몰토크를 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분의 업무공간이 공개적인 공간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런 곳이라 그냥 지나치기도 뭐한 그런게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와 동갑내기 직원 하나도 합류하게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외모 평가 공격이 쉴 새 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자'라면 살을 빼야 하고, '여자'라면 피부 관리를 해야 한다, '여자'라면 나이 들어서 비비크림정도는 발라줘야 된다, '여자'라면 주름 안 생기게 해야 한다, 딱딱스구리 너도 늦지 않았다 등등등등......
그니까, 나도 안다. 저 말들이 본인이 받은 압박에 의거하여 내게 해주는 '선의'의 조언이라는 것을. 왜 아니겠는가.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한 나라의 장관이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화장을 하라거나 외모지적을 받는 세상인데. 저런 조언은 너무나도 일반적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냥, 날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면 그게 너무 욕심인 걸까? 내게 하는 조언에 주어를 남자로 바꿔서 말해도 괜찮은 말만, 그런 말만 해주면 안 되냐는 건데..

"철수(가상의 인물, 남자)야, 너 나이 들면 비비크림 정도는 기본으로 발라줘야 해", "철수야, 너 남자가 그게 뭐니 다리 좀 오므려", "철수야, 주름 자글자글한 거 봐라. 링클프리 제품 좋은 거 추천해 줄까?".. 이런 얘기 남직원한테는 절대 안 할 거면서. 그러면 나한테도 안 했으면 한다는 거라고요.

물론 나도 친한 사람하고는 외모 얘기 하지 왜 안 하겠는가. 얼굴이 자글자글하고 어쩌고, 살이 쪘니 어쩌니 별 얘기 다하지. 기미가 많다며 도미나 크림을 선물 받기도 하고, 각질제거제며 팩이며 중학생 여동생 챙기듯 챙김 받는다고요. 그리고 그게 애정에서 비롯됨+신뢰가 쌓인 관계니까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거고.

근데 나는 회사에서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외모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는 거다.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니잖아요.. 제가 언제 당신에게 내 얼굴을 평가해 달라고 했냐고요.. 멋대로 정육점의 고기처럼 내 외모를 부위별로 평가하실 거면 돈이라도 주면서 하시든가.

그리고 나는 여자는 예쁘지 않아도, 꾸밈노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에서 살고싶다. 그리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여자가 예의 없게 화장도 안 하고 사네'라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이뤄낸 업적에 대해 평가받는 삶을 살 거다. 외모는 나의 자산이 아니다. 나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일 뿐이지.

나는 아주 쪼글쪼글하고, 흐리멍덩하며, 뚱뚱하고, 살이 처지고,  그리고 아주 유쾌하고 제멋대로인 할머니가 될 거다. 실은 욕쟁이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이긴 하지만.

*신체이미지라는 이슈가 내게는 삶을 관통하는 주제다 보니 엄청 두서없고, 화도 많이 나 보이는 글이라 업로드를 고민했지만 그냥 올리기로 했다.
이 글이 누군가를 평가하고자 하는 글이 아님을, 비난하고자 하는게 아님이 잘 전달되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