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개판이네요

우리에게 주어진 파이가 너무 작아서

딱딱쓰구리 2024. 11. 17. 13:36

*동덕여대를 비롯한 모든 여대의 공학 전환을 반대합니다. 학생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학교 행태를 규탄합니다*
 

 
현 회사에 재직하면서, 나를 퇴사 직전의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은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반면 나를 견디게 해준 것 역시 여성들이었고.
그렇듯이 여성은 언제나 야망넘치고, 독하고, 선하고, 못됐고, 배려넘치고, 음흉하고, 미련하고, 지혜롭고, 똑똑하며 공정하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내가 우리학교에 입학 했을 때 나보다 더 좋아했던 건 우리 언니였다. 우리언니가 지금은 조금 재미없어졌지만 그는 내게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알려준 사람이었고, 여대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나보다도 잘 알고 있었는데 본인이 공학에서 겪었던 수많은 불평등을 체감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되려 미디어와 사회가 심어준 '여남 로맨스'에 절여져 있던 나는, 여고시절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 캠퍼스에 큰 기대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대 캠퍼스가 내게 준 경험은 시간이 지나고 사회에 나와서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저 말을 이해할 수 없다기 보다 저 당연한 명제를 이상하게 해석하고, 이상한 경우에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대에서 나는 정말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독한 인간들이 어찌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말도 못했다. 근데 또 다들 다같이 잘되야 한다는 생각은 어찌나 강했는지 좋은 정보가 있다 하면 냅다 공유하고 봤었다. 정보는 공유하되, 그 안에서 경쟁은 공정하게. 각자 능력으로 승부보자, 잘해봐라 이런거. 물론 그 안에서도 정치를 빠르게 파악한 애들도 있었고 쉬운길을 귀신같이 찾아가는 애들도 있었지만.
여대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적이었다가, 동지였다가, 뒷통수를 쳤다가, 서로를 이용해 먹었다가, 싸울 땐 든든한 내 편이었다가,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였다. 누군가가 정의한대로 살지 않았고, 누군가가 바란대로 살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입체적이었고 서로의 입체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공간안에 있었다. '여자'라는 정의안에 우리를 편협하게 가두지 않았다.
여대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각자를 입증할 수 있었고, 공정하게 경쟁했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우리가 다 해 먹었고 노력하면 언제든 일등과 꼴등은 바뀔 수 있었다. 성별같은 것 때문에 만년 2등일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주류였고,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파이는 작은데, 그 중에 대부분은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고, 여성에게 주어진 아주 작디작은 파이를 여성들끼리 또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시당초 그 '여성용 파이'안에 들어가는 것도 개빡센데, 그 안에서 내몫을 차지하려면 내 능력과 그 이상의 무언가로 어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왜 나온지 그제서야 체감했다. 애시당초 우리는 남성들의 파이에 들어갈 수 조차 없어. 그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판에 넣어주질 않아. 공고한 남성연대는 그들만의 판인거고, 우리는 우리들의 작디작은 경쟁공간에서 각자의 성취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지같은 상황이지. 너도 나도 야망과 능력이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건 이 작디 작은 콩 한 쪽 뿐인걸. 널 존중하지만 난 내 몫의 파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널 밟는 수 밖에.
 
대다수의 파이를 차지하고, 여성들의 몫을 나눠주지 않는 남성을 원망하기 보다 나와 평등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원망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기대, 나와 연대해 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를 지지해 줄 것이라 기대한 여성이 등을 돌렸을 때의 실망감이 더 큰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의 파이를 차지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남성이 적이고,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하는 여성도 적'일 뿐이다. 그러니 비열한 경쟁을 하는 사람들을 원망하되, 경쟁을 두려워 않기를 바란다. 체면도 중요하지만 나의 욕망을 가두지 않기를. 양보를 바라기 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경쟁하고 페어게임을 즐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 빌어먹을 파이, 우리가 다 해먹을 수 있는 사회로 뭐든 하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성공하기를, 더 많은 여성이 위로 올라가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악하고 음흉한 여성보다는 독하고 야망넘치고 유능한 여성들이 더더 많이 위로 올라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바란다. 저열하게 권력에 빌붙는 남성들이 너무나 쉽게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많이 보지 않았는가?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아서 독하다 평가되는 여성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비난하기보다, 저열하게 여성을 밟고 올라간 남성들을 먼저 비판할 것이다.
 
동덕여대 출신은 아니지만, 여대 출신으로서 여대가 내게 준 가르침과 철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다. 그리고 여대는 아직 그 필요성이 다하지 않았다. 더 많은 여성들에게 1등 시민으로 사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는 공학전환을 반대한다. 본디 주인인 학생들의 바람대로 학교가 굴러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회사욕만 쓰자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지껄여봤다. 
물론 앞으로도 음흉하고 이기적인 팀원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겠지만, 그들의 악행의 원인이 염색체가 XX라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형성할 수 밖에 없었던 고정관념+기본적인 인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쩝. 여자로 살기 더럽게 빡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