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이야기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으며 특정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나름 다양한 회사의 면접 경험이 있고, 면접까지 가기만 하면 늘 합격을 했었다. 그건 내가 말을 잘한다거나 다른 지원자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아마도 지원한 자리에서 요구하는 겸손한 태도와 적절한 적극성을 연기한 것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물어보는거 다 거기서 거기기도 하고 답변도 거기서 거기라고 느꼈었다.뭐 운이 좋았기도 했겠지만.
그런데, 지금의 직장처럼 대놓고 면접에서 사상검증을 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주로 경력을 쌓아온 곳들이 공정채용에 대해 의무가 있는 기관들이었고, 이제 생각하면 심사위원들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분들이셨던 것이었겠구나싶다.
현회사의 면접은 일단 심사위원들이 전원 남자였다. 여기서부터 나의 면접 경험과의 차이점이 발생했다. 내 경력분야는 여성전문가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곳이었고, 대부분 인권문제를 다루던 분들이라 개쌉소리를 공적인 공간에서 하시는 분들은 딱히 없었다. 간혹가다 뭔소리야 싶은 남자 심사위원이 있으면 늘 여성 심사위원이 "ㄴㄴ 너 개쌉소리 그만"하고 처단해주시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과거의 면접경험과 다른 점들은 위에서 말한 심사위원의 성비 뿐 아니라 면접 대기과정, 면접에 소요된 시간, 다른 지원자들의 태도,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인식 등등 다양했다.
뭐 다른건 다 차치하고, 면접장의 구조가 매우.. 국감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는데, 면접자를 가운데 두고 심사위원들이 둘러싼 형태라 조금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자는 기세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떨어져도 돌아갈 회사가 있었기에 딱히 긴장은 하지 않았었다.
시작과 동시에 질문들도 내가 예상했던 질문들인지라 적절하게 생글생글 웃어가면서 면접을 잘 마무리 했는데, 딱히 이렇다할 포인트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면접의 느낌? 내정자가 있거나 조직에서 바라는 유형의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밀리겠다 하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왔었다.
그 아리까리한 느낌은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는지, 갑자기 한명이 내게 성주류화제도 중 한가지 제도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그때, 감이 왔다. 이 질문으로 날 거를지 안 거를지 판단하겠구나 하는.
주로 여성기관에서 경력을 쌓았고, 그 경험으로 일을 하겠다는 내용이 면접중에 있었는데 아마 내가 "페미"일까봐 물어본 모양이었다. 알지알지 니가 뭘 바라고 묻는지 나는 알지.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답을 원하는지도 알았다.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그 말, 나 역시도 지금 성주류화 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그 말을 듣고 싶었겠지.
솔직히 말하면 심사위원이 아는게 없고 모지리라서,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중부정+아사무사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말로 대충 답하자 그들은 "그래 내가 틀리지 않았어!"라는 태도로 매우 흡족해 했다.
그니까, 저들은 잘 모른다.
한국여자들은 페미니스트인 것을 밝히는 순간 말도안되는 불합리함을 당하기에 그걸 아주 능수능란하게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에베베베 나 페미니스트 맞지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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