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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된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해석할때는, 해석하는 사람의 세계가 녹아들어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브스턴스'를 보면서 신체이미지와 섭식장애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가지는 제 평생을 관통해온 주제거든요. 그래서 이게 뭔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을수도 있는데 그게 또 저에게는 정답인 그런.. 네.. 그니까 제 세계가 중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쓰여진 감상문입니다.
1.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 - 자기자신이 부정하는 '나'에 대하여
영화 속 엘리자베스와 수는 마치 서로가 다른 인격체인 것처럼 굽니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철없이 균형도 맞추지 않고 제멋대로에 뭘 잘 모른다'고 말하죠. 그리고 수는 엘리자베스를 '내가 개고생할 동안 먹기만 하는' 한심한 인간 취급합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한탄을 들은 '서브스턴스' 개발자는 지속적으로 말합니다. 당신들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고. '하나'의 존재라고 말이죠.
사실 이런식의 자아인식은 우리에게 매우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수가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순간을 보면 여성들이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순간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식을 한 나(칠면조를 통째로 먹은 엘리자베스)', '하루종일 티비를 보며 '관리'를 하지 않는 나(소파에 그대로 자국이 남을 만큼 TV앞에 앉아있던 엘리자베스)', '늙은 나(수의 TV인터뷰에서 표현되는 엘리자베스) ' 혹은 '늙었으면서 조용히 있지 않고 멋대로 굴며 문제를 일으키는 나(음식을 만들며 집을 엉망으로 만든 엘리자베스)'에 대한 시선 말입니다. 정말 소름끼치게도 내가 나 스스로를 혐오하고 부정하는 순간, 혹은 사회가 여성들을 비난하는 순간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 같은 존재임을 끝끝내 인지하지 못한(혹은 안한) 것으로 보이게끔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존재라는 걸 대놓고 말해주는데도 주인공은 물론 관객조차도 그 둘을 별도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죠. 저는 이것이 강한 자기부정과 자기혐오에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headwig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deny me and be doomed'(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이 말처럼 '서브스턴스'는 자기자신을 철저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나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2. 여성의 식욕은 왜 부끄럽고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엘리자베스에서 수로 '스위치'되는 날, 수는 엘리자베스가 먹어치운 음식을 보며 '자제좀 해!!(control yourself)' 비명을 지르죠. 뿐만 아니라 수의 꿈을 통해 음식섭취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알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먹어치운 칠면조인지 치킨 다리가 본인 몸에서 돌아다니고 그걸 배꼽으로 꺼내는 꿈이요. 사실 극중 엘리자베스는 '자기관리'의 아이콘 그 자체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여전히 핫하게 에어로빅을 선보이며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저 음식을 먹고 게으른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수는 극대노하고, 일을 하다가 본인의 몸이 괴이해지는 악몽을 꿀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해 합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먹는 것'에 대해 죄책감 혹은 혐오감을 갖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많이 먹는 여성'은 게으르고 자기관리, 즉 'control yourself'가 안되는 여성으로 치부당하기 일수입니다. 일상속 대화에서조차 본인의 식욕이 강하지 않음을 강조하곤 합니다. 혹은 많이 먹어도 용서받기 위해선 날씬한 몸매를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덩치가 큰 여성이 음식을 섭취할 때, 얼마나 쉽게 비난의 시선이 꽂히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죠.
작가 '록산 게이'는 본인의 책 '헝거'에서 자기관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관리란 어떤 면에서 부정이나 거부의 몸짓이기도 하다'라고요.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 늘 내 몸을 감시하면서 본인을 억제하는 것 그것이 자기관리라는 것인데요. 무엇을 위한 '자기관리'인지, 무엇을 위한 통제인지를 생각해보면 수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갈망되는 몸, 성적매력을 발산하는 몸을 유지해야 하는 수에게는 음식섭취가 아주 혐오스럽고 통제해야만 하는 행위로 느껴지는 것이죠. 근데 생각해보면 엘리자베스가 실제로 먹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분노하는 수에게 동조했거나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어땠을지 눈앞에 떠올랐을 겁니다. 절망에 빠져 아무런 희망도 없이 기계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모습.. 왜냐하면 수많은 여성들이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초반부, 제작자 하비와 엘리자베스는 한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때 하비는 아주 게걸스럽고 너저분하게 새우를 먹습니다. 엘리자베스를 앞에 앉혀두고 아주 탐욕스럽게 새우를 먹으며 말하죠. 이 판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여성은 특정 연령대의 젊은 여성이며, 50세가 넘은 여성은 대체 뭔지 모르지만 '그게' '멈춘다'고요. 이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충 이런 개소리를 쏟아내며 새우를 쳐먹은 뒤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다른 남성에게 가버리죠. 또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하비는 게걸스러운 식사를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어느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속 행위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다른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죠. 찾아보니 배우 데미무어가 이 장면을 가장 폭력적인 장면으로 꼽았다고 하는데요. '새우'를 먹는 행위에 대한 해석이 있더군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3. 인격체가 아닌 사물로서의 여성
엘리자베스의 후임을 뽑는 오디션 자리에서, 지원자를 평가하는 남직원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코가 있을 자리에 차라리 가슴이 있으면 좋겠다'라고요. 지원자의 에어로빅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신체를 평가하고, 또 고기처럼 부위별로 따져 이야기하죠. 그리고 수의 몸을 부위별로 관음하듯이 카메라가 담아냅니다. 수의 엉덩이, 수의 가슴, 수의 얼굴을 화려한 조명아래에서 탐닉하듯이 담아내죠. 남성도 여성도 모두 그것을 갈망하길 바라는 것처럼요. 조금 우스웠던 장면은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사람들이 그렇게 갈망해 마지않던 '가슴'을 만들어냈을때 입니다. 고깃덩어리처럼 취급할 땐 언제고,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가슴 옛다 여깄다! 하는 느낌으로 가슴을 만들어냈는데 혐오감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이 좀 우습더군요. 그리고 대중문화 속 여성의 몸을 사물화하는 것은 불편해 하지 않으면서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몸이 기괴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제게는 조금 웃겨요.
우리네 일상에서도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한군데한군데 따져가며 품평하는 모습은 너무나 빈번하니까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가슴 예쁜 애', '엉덩이 빵빵한 애'로 분류하고 여성들을 신체부위로 부르는 등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연예계와 같이 보여지는 직업을 가진 여성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응당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여성이라면 누구나 외모품평을 피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여성들 스스로 이런식으로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외모품평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진짜 지긋지긋하고 피곤한 일입니다. 도대체 그런 강박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러나 싶어요.
여튼 오래간만에 아주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장르를 '바디호러'라는 표현했던데, 제게 있어 호러스러운 장면은 수의 몸을 카메라가 관음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호러라고 표현하면 외모품평이 자연스러운 제 일상도 이미 호러..라는 생각도 상당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 밖에 음악이 감각적이어서 좋았구요. 추억의 'Pump it up'음악도 좋았어요. 저 대학생때 저 에어로빅 비디오가 유행이어서 저도 한때 따라했었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 자기부정에 대해서는 머리속에 맴도는 말들이 더 많은데 쓰기가 쉽지 않네요. 여튼 더 심오한 의미들이 많겠지만 서도 대충 느낀점을 기록으로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