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_스포일러] 죽도록 (사랑을, 용서를, 화해를, 행복한 선택을, 농담따먹기를, 음담패설을) 하고싶어_인생은 원래 그런거니까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배우들의 작품을 주로 리뷰하게 되는군요..
저는 미셸 윌리암스를 좋아합니다. 어린시절 OCN의 전신 DCN에서 '도슨의 청춘일기(Dawson's Creek)'에서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습니다. 그에게서 보이는 알수없는 우울함,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 그래서인지 늘 청년 혹은 소녀같은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
그리고 최근에 본 '죽도록 하고 싶어(dying for sex)'의 내용도 인상적이고, 미셸 윌리암스의 연기도 좋아서 눈물콧물 쏙 뺀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제목때문인지 단순히 '야하고' '죽음앞에서 철없는 방탄한 여자'의 이야기로 묘사한 리뷰를 꽤 봤습니다만,(물론 제가 제대로 안 찾아 본 것일수도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성관계를 하고 싶어서 안달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참고로,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여남 sex신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목적인 분들이라면 번지수 잘못 찾으셨네
대략적인 내용을 세줄 요약하자면..(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으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 주인공 몰리는 유방암을 진단받아 치료를 받았고, 남편과의 사이가 이전과는 다른 상태
- 부부상담 등 노력하던 중 유방암이 전이 된 것을 알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죽기 전 오르가즘 느끼기'라는 목표 설정
- 다양하게 성세계를 탐험, 그리고 알게된 그녀의 취향과 그 원인 발견. 그리고 사랑과 위로, 화해.
뭐 이런겁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는데요. 최근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과 묘하게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는 점 때문에 감정이입을 많이 한 듯 합니다. 인상적인 내용 몇가지만 적어볼게요. 아래부터는 정말정말 강스포가 적힙니다!
1. 왜 몰리는 (파트너와 함께)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병원의 상담사 소냐와 상담을 하며 몰리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낀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유교걸들 여기서 동공지진 날수도 있어요. 한 성인용품 브랜드에서 우리나라 2030 여성을 대상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르가즘을 가끔 느끼거나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답한 여성이 82%..(이거시 현실) 원래 못느끼는거 아냐?라고 생각할 한국 여성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극이 전개가 되어가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몰리가 원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관계에서 느끼는 오르가즘'은 단순한 쾌락이 아닙니다. 몰리의 첫 성적 경험은 엄마의 남자친구로에게 강제로 오럴섹스를 강요받은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엄마와 몰리 모두 큰 상처를 입게되죠. 심지어 몰리는 파트너와의 관계를 가지려 할 때마다 가해자 남성이 헛것으로 보일만큼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성관계를 가질 때 누군가(몰리 자신을 포함해서)를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 통제권이 본인에게 없는 것에 대한 분노가 몰리를 잠식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쾌락을 함께 하려는 순간마다 가해자의 모습이 자꾸 몰리를 괴롭히죠. 몰리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책감과 분노, 두려움이 그녀를 끝없이 괴롭히는 겁니다.
2. 몰리에게 sex란 무엇일까? 죽기전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 왜 중요할까?
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를 해소하고 싶다는 표현이 아마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다'라는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네 탓이 아니라는 위로, 서로를 향한 용서와 화해를 이뤄내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스킨쉽이 가능하고 그게 결국 오르가즘으로 갈 수 있을테니까요.
죽음을 앞둔 몰리가 엄마와 화해, 위로를 나누던 순간이나 화장실에서 성적학대에 대한 글을 친구에게 읽어주려던 순간에 어린시절의 몰리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그 시절의 몰리에게 위로와 격려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줍니다. 죄책감과 분노,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어린소녀를 늘 마음속에 품고서 살았던 몰리가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옆에있는 순간에도 몰리는 가해자의 환영을 보며, 자꾸만 과거에 발을 잡힙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 사람이 몰리에게 말하죠 "I'm here." 그 말을 듣고 몰리가 다시 현실의 사랑하는 이에게 집중하는 걸 보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몰리는 어쩌면 그 성적피해를 입은 순간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 채 괴로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가해자 개X발새끼 지옥불에 떨어져라.
그래서 진짜 가슴 아팠던 장면 중 하나. 사이버 창남에게 협박당해 자위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모습이 촬영당한 몰리의 사진을 보며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보기 역겹다"라고요. 진짜.. 난 남편 니가 역겹더라.
3.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 유머감각 혹은 추억.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그것 중 하나는 유머감각임이 확실합니다.
몰리의 투병생활을 함께 한 그의 절친 니키와 몰리는 둘만의 유머코드와 둘만의 추억으로 만들어진 우스개 소리를 계속해서 나누는데요. 삶이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웃음이 있다면, 조금은 견딜만해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얼마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제게도 장례식장에서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있었는데, 가족들과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보면 뭐랄까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요. 여전히 아빠가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남아있는 우리에게 끝까지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고요.
4.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이건 이 드라마의 후기를 좀 찾아보다가, 그리고 얼마전 친구들과의 대화중에서 느낀 것이긴 한데요.
사실 이 드라마가 정말 sex에 미쳐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1화만 봐도 알 수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후기는 뭐랄까.. 좀 이 드라마가 너무 가볍게 보인다는 듯이 적힌 것들이 많았어요.
이 드라마가 그렇게 어려운 드라마도 아니고 굉장히 쉽게 자기용서와 타인용서, 그리고 트라우마의 극복과 사랑, 우정 같은 걸 표현하고 있음에도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요.
섹스, 그리고 성적 학대라는 주제로 공감대를 표현한다는 것이 한국여성에게는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일수도 있겠다라는 아주 고리타분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얼마 전 만난 친구들이 제게 묻더라구요. 넌 왜 비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냐고. 주변에 안좋은 사례가 있었냐고. 언니 보면 결혼하고 싶지 않냐고.
그래서 저도 물었어요. 넌 왜 결혼을 했냐고. 그랬더니 그냥 남들 다하니까, 그래야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니까 했다 그러더군요.
좀 의아했어요. 결혼을 '하는' 선택은 별 생각없이 해도 무방한데, 결혼을 '안하는' 선택은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하는걸까?
깊은 상처를 받아야 비혼이라는 선택을 하는거라고 믿고 싶은걸까? 아니면, 사회에서의 '정상성'을 유지하지 않는 게 수많은 이들에게는 얼마나 두려움이길래 이렇게 무례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걸까?
전 이 드라마가 매우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다짐했어요. 나에게 더 헌신해야지. 나에게 더 솔직해야지.
더 많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표현해야지.
다짐대로 잘 되진 않겠지만, 죽도록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하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습니다.